[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남을 죄짓게 하는 것은 상처를 주고 희망을 죽인다”


크고 작은 “매일의 모순”, 교회 내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저지를 수 있고 또한 노동의 세계에서도 볼 수 있는 모순된 삶은 “죄를 짓게 한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11월 13일 월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에서 이같이 당부했다.

교황은 이날 말씀의 전례인 루카 복음서의 구절(17,1-6)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님께서는 이 복음 구절을 긍정적인 의미로 입증하시면서 시작하십니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1절).” 교황은 사실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며,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은 일어나고, 또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황은 예수님께서 “입증되고 있는 사실을 경고하신다”며 동시에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라고 경고하신다.

주님께서는 “강력한 경고”를 선언하시고, “더 나아가” 이같이 덧붙이신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2절).”

교황은 그렇지만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주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3절) 곧, 너희는 죄짓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 실로 죄짓게 하는 것은 하느님 백성의 상처받기 쉬운 마음에 상처를 주고, 하느님 백성의 약점에 상처를 주며, 많은 경우 이 상처들은 평생 남기 때문에 나쁩니다. (...) 게다가 남을 죄짓게 하는 것은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죽일 수도 있습니다. 희망을 죽이고, 환상을 죽이며, 가족을 죽이고, 수많은 마음들을 죽입니다.”

교황은 남을 죄짓게 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번번이 택하셨던 주제”라고 단언했다. 예컨대 “예수님께서는 어떤 설교를 하신 다음에,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루카 7,23)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죄를 짓지 않도록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전세를 내셨을 때 베드로 사도에게 ‘그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말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마태 17,27). 항상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까지 경고하신다.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마르 9,43). 그런 다음, 다시금 십자가 앞에, 십자가의 계획 앞에 계셨던 그 순간, 다른 길을 택하라고 그분을 설득했던 베드로 사도에게, 혼란을 일으키지 말라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마태 16,23).”

교황은 “예수님께서 이 점에 있어서 매우 분명하시다”고 말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이런 경고를 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왜냐하면 어떤 그리스도인이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이방인처럼 산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죄를 짓는 것, 하느님 백성으로서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교황은 이렇게 부연했다. “얼마나 자주 우리 본당들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습니까. ‘아니요, 저는 교회에 나가지 않을 겁니다. 이 남자 또는 저 여자는 매일 교회 안에 들어가 촛불을 켜놓고 빕니다. 그런 다음 바깥에 나오면 다른 사람들에 대해 험담하고, 가라지를 심습니다. (...)”

교황은 다음과 같은 사례를 통해 논증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본보기로써, 그들이 모순된 삶으로써,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까? 그리스도인들의 일관되지 못한 삶은 악마가 하느님 백성을 약화시키고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한 가장 쉬운 무기들 중 하나입니다.” 한 마디로 “말로는 이렇게 하고 행동은 저렇게 하는” 삶의 방식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던 내용입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마태 23,3). 이것이 바로 ‘모순된 삶’입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우리 각자, 오늘 자문해봅시다. 내 삶의 일관성은 어떠한가? 내 삶에 복음과의 일치, 주님과의 일치가 있는가?” 그러므로 “혹시 나의 모순된 삶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드는 동기가 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나는 매주 주일 미사에 참례하러 가고, 가톨릭 액션 단체 혹은 이런저런 연합회 혹은 이런저런 단체의 회원이지만, 내 고용인들과 은밀히 거래하고 9월부터 6월까지 계약을 맺게 한다네.’ ‘그렇다면 7월과 8월은요?’ ‘알아서 해야지 이 사람아!’”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도 모순된 사람이라고 교황은 설명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매일 모순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는 그리스도인 기업가들도 남을 죄짓게 만드는 동기가 됩니다.”

교황은 “교회 안에서 우리는 사목자들이기 때문에, 사목자들이 죄를 짓게 만드는 행위에 관해 자문해볼 수 있다”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양들을 혹사시키며, 돈을 벌기 위해 양젖이나 양털을 찾고, 제 옷을 입기 위해, 허영을 위해 애쓰지만, 양떼를 돌보지 않는 목자들에게 ‘너희는 불행하여라!’고 말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를 들어,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는 사목자들의 스캔들도 있습니다. 멀리 있는 사목자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목자는 가까이 머물러야 하고 목자가 멀어질 때 죄를 짓게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멀리 있는 이런 사목자는 ‘주인’같은 사목자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돈,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목자가 돈에 집착할 때, 죄를 짓게 만듭니다.” 교황은 “돈에 집착하는 사목자”를 보면서 “사람들이 죄를 짓게 된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모든 사목자는 이렇게 자문해야 합니다. 돈과 나의 친밀도는 어떠한가?”

“허황된 것을 찾으러 서성대는 사목자의 잘못도 있습니다. 허영이 그를 기어오르게 하지만, 그 대신에 그는 온유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온유와 겸손은 하느님 백성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 스스로 ‘주인’이라고 느끼며 모든 이를 명령하는, 교만한 사목자의 스캔들도 있습니다. 그는 하느님 백성의 봉사자가 아닙니다.”

교황은 이같은 사례는 많다고 강조했다. “예레미야 예언자,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예레미야의 생각을 받아들여 목자들에 대해 긴 설교를 했습니다. (...) 사례를 계속 말할 수 있겠지만, 오늘은 우리 각자 이렇게 자문해보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믿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목자로서 죄를 짓게 만드는가? 죄를 짓는가? 내게 맡겨진 하느님 백성의 상처받기 쉬운 마음에 상처를 주는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하나가 되게 하며, 행복하게 해주고, 평화와 위로를 주는 대신에, 나를 ‘주인’ 사목자라고 느끼거나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중요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그들을 쫓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루카 17,3) 교황은 다음과 같이 강론을 마무리했다. “오늘은 이 점에 관해 양심성찰을 하는 멋진 날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죄를 짓게 만드는가, 혹은 아닌가? 그렇다면 어떻게? 이처럼 우리는 주님께 대답할 수 있고, 조금 더 그분께 다가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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